"작별" 문학상 소설집에 포함되어 있는 단편이야. 김유정 문학상 이었는지 이상 문학상 이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 소설은 곧 이야기인데..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다가 집중하려는데 다른 친구가 또 진지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걸 들어야 하는 것처럼, 나의 물리적, 감정적 집중력의 전환이 필요한데..그래서 단편집을 한번에 읽어나가긴 참 힘들어.
(수정.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 작품집)
그래도 한 편을 제외하고는 모든 단편을 읽었어. 한 두편의 이야기는 좀 짜증도 났어.솔직히. 심사기준이 뭔지 모르겠다 싶기도 했어. 암튼 모든 이야기들을 집중하려고 많이 노력했었어.
그러고도 눈사람으로 변한 여자의 이야기를 온전히 기억해 내는건,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은 작가라는 배경과, 그 이야기를 위해서 이 책을 펼쳤다는 내 나름의 집중력 때문이려나?
어느 겨울, 벤치위에 앉아있던 여자는 갑자기 눈사람으로 변했고, 조금씩 녹아내려.
데이트를 하기로 했던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조금씩 몸이 얼굴이 녹아서 사라져.
저녁 한끼를 같이 하려고 해도, 어딘가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더 녹아내릴꺼라 뜨거운 음식이나 차를 마실수도 없어.
먼 길을 만나러 온 그 남자는, 궁핍해서 밥값도 없는 상황인 걸 알기에 얼마를 주어야 할지, 어떻게 주는게 좋을지까지 생각하고 부탁하며 식사를 하고 오라고 돈을 쥐어주는 여자.
거절을 하지만 결국은 산 사람은 먹어야하는 것처럼, 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거스름돈을 들고 오는 남자
이렇게 사라져 간다니 애틋하지만..마지막 이기에 오로지 같이 걷기만 하는 그들
입맞춤을 통해서, 뜨거운 김에 여자는 자신의 입이 녹는 것을 참고, 남자는 입술에 차가움을 참아야 했지.
여자에게는 아들이 있어.
남자를 돌려보내고서라도, 아들을 보러 가야지. 엄마가 이렇게 갑자기 변했고 집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그래도 봐야 하니까. 그냥 그 상황이 갑자기 너무 생각나서 슬퍼.
아이가 놀라지 않게, 그 아이도 슬프지만 또 감정의 산으로 무너질 정도는 아니도록 그렇게 모든 등장인물들은 담담하게 여자가 눈사람으로 변했고, 녹아가고 - 소멸해가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슬퍼하지. 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여.
조용하지만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부여잡고 있는 중일꺼야. 또는 그렇게 무너질 겨를도 없는거야, 상대에 대한 아린 마음에.
독서후기를 써야지 생각도 한참을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김장철이 되어서 생각이 났어.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추워지면서 '눈'이 생각난 걸까? 추운 날씨, 마당에서 무거운 절인 배추를 헹구던 엄마의 손이 생각나서일까?
엄마가 배추를 헹구다가, 녹아버릴것 같다 생각이 들었는데 왜 못하게 하지는 못한걸까?
춥고 피곤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며 견뎌내던 그 겨울새벽의 일들도, 나를 위해서 추위를 견뎌내던 엄마처럼
"나"라는 우리 자신이 조금씩 녹아가고 있단 걸,
"우리"는 이제 조금씩 깨닫지만, 크게 감정에 동요되지는 않아. 삶이란 원래 그렇게 조금씩 녹아가는 거니까.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처럼 조금씩 쌓이고, 또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는 모든 진행형.
아마도 그 자체가 "삶"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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